서울시 '희망의 집수리', 도입 17년 만에 드러난 한계 / 신청 어려운 취약가구 배제, 일률적 상한 250만 원도 도마 위
곰팡이는 돌아왔다
서울 송파구의 한 반지하 다세대주택. 지적장애 3급 A씨의 집 벽에는 결로 현상으로 생긴 검은 곰팡이가 다시 번지고 있다. 곰팡이와 진드기에 노출된 A씨는 피부와 입술에 염증이 생겨 피가 나거나 딱지가 앉는다.
A씨는 2024년에야 '희망의 집수리' 지원을 받았다. 자폐와 지적장애 때문에 직접 신청이 어려워 그동안 제도 밖에 있었고, 자원봉사자가 대신 나선 뒤에야 도배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원금 상한에 막혀 단열 벽지 대신 일반 벽지를 발랐고, 2년 만에 곰팡이가 재발했다.
제도는 '성공'했지만…
희망의 집수리는 서울시가 2009년부터 저소득 가구에 가구당 최대 250만 원의 수리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해까지 2만2558가구가 혜택을 받았고, 올해는 25억 원을 배정해 상반기 650가구를 지원했다. 하반기에는 350가구를 추가 모집 중이다. 수혜 가구 만족도 조사에서는 90%가 '만족'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이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가구다.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쟁점 ① 신청할 수 있는 사람만 받는다
지원 대상은 기준 중위소득 60% 이하 가구로, 월소득이 1인 가구 153만8543원, 4인 가구 389만6843원 이하면 해당한다. 이 요건을 충족하면 선착순으로 선정된다. 집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선정 기준이 아니다.
직접 신청이 어려운 장애인, 고령자, 고독사 위험 가구는 제도를 모르거나 알아도 접근하기 어렵다. 이 같은 현실은 현장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사회적협동조합 수(이사장 하효선)는 2017년부터 약 800가구를 대상으로 취약가구 주거환경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A씨처럼 주거환경 개선이 시급한 고위험군 현장이 10% 안팎이었다. 하 이사장은 "이들 중 상당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거 지원 제도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소득을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착순 선정하는 방식이 주거 위험도가 높은 가구를 가려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쟁점 ② 250만 원 상한, 모자라거나 남거나
일률적인 상한도 문제로 지적된다. 큰 비용이 들지 않는 집도 시공비를 상한에 맞춰 쓰는 경향이 있고, 대규모 보수가 필요한 집은 250만 원까지만 지원받을 수 있다. A씨의 사례처럼 단열 같은 근본 보수는 예산에 밀리기 쉽다.
쟁점 ③ 위험을 재는 '자'가 없다
전문가들은 소득 대신 주택의 위험도를 선정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 이사장은 "서울시의 현행 선정 방식은 같은 저소득층이라도 주거환경의 위험도가 크게 다른 가구를 동일한 선상에서 취급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위험한 주거 환경은 고독사·낙상·화재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택 자체의 위험도를 측정하는 지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선 피복 손상 여부, 배관 누수, 낙상·미끄럼을 유발할 수 있는 시설 등을 평가할 수 있는 체계가 없다. 최찬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명예교수는 평가 도구의 부재로 곰팡이·누수·낙상 등 주거 위험에 노출된 가구가 지원 대상에서 빠지고 있다며, 지방자치단체가 주거 안전 지표를 적극 연구해 제도로 채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추천 경로 열려 있다"
서울시는 현행 제도에도 보완 장치가 있다고 설명한다. 김은례 주거안심사업팀장은 소득 기준이 원칙이지만, 동주민센터 직원이 긴급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면 우선 지원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홍성수 주거복지과장은 자치구가 선정위원회를 열어 배점 기준표에 따라 대상을 정하고, 스스로 신청하기 어려운 가구는 동주민센터가 상세히 파악하고 있어 자치구가 추천할 수 있는 경로가 열려 있다고 말했다.
시설 수리에서 '관리'로
지원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지금의 사업이 시설 수리 같은 하드웨어에 치우쳐 있다며, 해충 박멸과 감염병 매개체 관리 등 소프트웨어 측면으로 지원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엇이 바뀌어야 하나
희망의 집수리는 17년간 2만 가구가 넘는 집을 고쳤다. 그러나 ‘A씨들'은 신청 단계에서 제도 밖으로 밀려났고, 겨우 지원받아도 수리가 '반쪽'에 그쳐 2년 만에 같은 곰팡이와 마주하고 있다. 하효선 이사장의 말처럼 같은 저소득층이라도 집의 위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선착순·소득 중심 선정과 일률적 상한을 주거 위험도 중심으로 바꾸고, 신청이 어려운 가구를 먼저 찾아가는 체계를 갖추는 일이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