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신도들이 집결하여 도문을 열어젖힌 지 어언 한 세기. 오랜 역사와 탄탄한 전통, 100만 신도라는 교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히 그 신앙과 진리의 맥을 이어오던 증산도가 근래 들어 새삼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근세 이래 한민족 정신문화의 주요한 한 축을 이루어온 증산도를 만나본다.
/김영현 객원기자
증산도는 강증산 상제(上帝)에게서 시작됐다. 강증산은 1871년 전북 정읍에서 나서 39년간 이 땅에 머물다 1909년 하늘로 돌아간 실존 인물이다. 증산도에서는 강증산을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으로 신앙한다. 그래서 강증산을 호칭할 때 ‘증산 상제’라 한다. 증산은 세상에 있는 동안 인류 구원을 위한 큰 작업(개벽 넘어 희망의 새 세상이 열리기까지 인류와 역사가 나아갈 원대한 프로그램을 구축했는데, 이를 증산도에서는 天地公事라 한다.)을 수행했다. 나아가 인류가 다가올 새 세상을 열어갈 법방(法方)을 가르쳐 주었다. 바로 이것이 증산도, 곧 증산이 내려준 대도(大道)다. 특히 신도들은 증산도가 종교를 넘어, 기존 모든 종교를 통합하는 큰 진리라 하여 교(敎)가 아닌 증산도(道)라 한다.
신도들이 결집하여 처음 도문을 연 것은 증산의 어천(御天) 2년 뒤인 1911년. 그의 반려자로서 종통(宗統)을 이어받은 태모(太母) 고수부(高首婦)에 의해서였다. 증산도에서는 증산 상제를 아버지 하나님으로, 태모 고수부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신앙한다.
태모 고수부를 중심으로 정읍에서 도문을 연 증산도가 본격 도세 개척에 나선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 성도 가운데 한 사람인 차경석이 태모 고수부를 대신해 도문을 맡아 이름을 보천교(普天敎)라 하고 포교에 나섰다. 조선 인구가 2천만 명이 채 안되던 1920년대 중반 보천교 신도는 700만(조선총독부 공식기록) 명이었다. 사람과 돈이 모이면서 보천교는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의 비밀 거점이자 자금원이 됐다.
그러나 “조선 내 종교를 일제히 정리하라”는 총독부의 지시와 지속적인 탄압 끝에 보천교 신도들은 뿔뿔이 흩어져 숨어야 했다. 도세가 부활한 것은 8.15 해방 이후. 집안 대대로 신앙의 불씨를 간직한 안운산(安雲山. 2012년 선화) 태상종도사의 개척 노력에 의해서였다. 보천교 신도였던 조부와 부친의 영향으로 일찍이 신앙의 눈을 뜬 안 태상종도사가 전국을 돌며 포교에 진력한 결과 단 기간에 수십만 신도가 집결하는 제2의 부흥을 이루었다. 그러나 어렵게 구축한 이 두 번째 도문 또한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전란 와중에 무산되고 말았다.
증산도가 거듭 부흥을 이룬 것은 1970년대 이후. 안 태상종도사와 안경전(安耕田) 종도사가 함께 세 번째 개척에 나서 100만에 이르는 오늘의 도세로 성장시켰다.
본부는 대전. 대전의 본부와 교육문화회관 등 이른바 ‘중심부’에서 종사하는 성직자만 해도 수백여 명이다. 불교의 사찰이나 기독교의 교회 역할을 하는 신앙의 성소는 도장(道場)이다. 국내만 해도 250개소 도장이 개설돼 있다.
증산도는 누구든지 신앙할 수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등록신도가 되려면 일정기간 증산도 ‘진리공부’를 거쳐야 하고 시험도 쳐야 한다. “무작정 포교를 통해 도세를 확산하려 하기보다는 깊이 있는 신앙을 하려는 사람인지 시간을 두고 그 진정성(眞情性)을 신중하게 가늠한다”고 관계자는 말한다.
종교단체들 가운데서도 보기 드물게 산하에 매머드 연구기관(상생문화연구소)이 있어 백여명의 박사급 연구원들이 몸담고 활동한다. 증산도는 이와 함께 2개의 대형 출판사(상생출판과 대원출판)와 대형서점(세종문고)도 운영한다. 연구소와 이들 기관이 힘을 모아 『월간 개벽』 등 정기간행물을 비롯해 증산도 진리를 전하는 서적과 관련 연구물들을 지속적으로 펴내고 있다.
증산도는 한국에서 시작된 민족신앙이지만 그 지향점은 세계다. 현재 20여 개국의 주요 도시에 도장이 자리 잡았다. 경전인 『도전』을 10개 국어로 번역, 출간하는 일도 다른 종교나 신앙단체에서는 보기 드문 작업이다.
특히 『도전』의 발간은 지난 1911년 증산도가 도문을 연 이래 자체적으로 가장 크게 평가하는 결실로 꼽는다. 증산도 관계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도전』은 ‘아버지 하나님인 증산 상제, 어머니 하나님인 태모 고수부의 생애와 가르침을 포함해 증산도 진리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우주를 주재하는 상제의 대도(大道)를 담은 원전(原典)’이라 하여 경전이라 하지 않고 『도전』이라 부른다.
『도전』은 도문의 최고 지도자인 선대 안운산 태상종도사의 지휘 아래 안경전 종도사가 도전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30여 년에 걸쳐 편찬했다. 강증산 상제의 발자취를 일일이 답사하고 생전에 그와 태모 고수부를 따르던 성도 및 후손들의 증언을 채록했다. 여기에 철저한 고증작업을 거쳐 1992년 초판, 2003년 개정판을 간행했다.
지난 2005년 STB상생방송을 설립해 2007년부터 전파 송출을 시작한 것도 증산도가 짧은 시간에 이뤄낸 큰 일 가운데 하나다. 상생방송은 현재 케이블 및 인터넷TV(IPTV), 위성방송망을 통해 전국 어디서나 시청할 수 있다. 대전의 증산도 교육문화회관에 자리 잡은 상생방송은 최첨단 방송시설을 갖추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한다. 증산도 진리를 비롯하여 한민족의 뿌리, 역사와 가치관을 고취하는 이른바 ‘한(韓)문화’프로그램이 대종이다. 상생방송은 현재 케이블방송과 인터넷TV(IPTV), 위성방송(스카이라이프)과 각종 방송 어플을 통해 전국 어디서나 시청할 수 있다. 더욱이 지난 2015년 2월 14일부터는 KORTV에 송출을 시작함으로 해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상생방송의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40여 년 줄곧 조용하던 전통, 이미지와 달리 지금 증산도는 대중화, 세계화를 모토로 떨쳐 일어나겠다는 기세다.
증산도가 한국을 넘어 세계를 향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상극(相克)의 세상이 끝나고 상생의 새 세상이 다가오니 이에 대비하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말은 짧지만 내용은 어렵다. 상극의 세상은 무엇이고 상생의 세상은 또 무엇인가.
무릇 어떤 신앙체계든 세 가지 구성요소를 갖는다. 첫째는 ‘현실진단’이고 둘째는 ‘미래비전’이다. 나아가 어떻게 현실을 넘어 미래에 도달할 것인가, 곧 개개인의 ‘행동지침’이 세 번째 요소다. 증산도는 어떤가. 이 세 가지 구성요소를 따져 증산도의 메시지를 음미해 보자. 먼저 『도전』에 나타난 증산도의 <현실진단>을 보자.
“선천은 상극의 운이라.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그리하여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리느니라.”(증산도 도전 2:17)
이는 무슨 뜻인가. 안경전 종도사의 자세한 이야기를 풀면 다음과 같다.
— 지금까지 역사는 상극의 역사였다. 내가 더 차지해야 잘 되고, 남을 이겨야 내가 살 수 있었다. 지금 문명이란 것도 치열한 경쟁의 결과다. 그 덕분에 인류의 문명은 이제 극을 달린다. 과학문명과 생활이기가 날로 발전하는 만큼 사람들은 행복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작 삶은 갈수록 힘겹다. 빈부격차는 커지고 갈등과 분쟁, 전쟁은 끝없다. 범죄와 테러도 일상화됐다. 자살이 늘어만 간다. 천재(天災)까지 기승을 부린다. 환경오염과 이상기후로 온갖 자연재해가 엄습한다. 여기다 새로운 질병이 잇따라 생겨나 사람-동물 가림 없이 떼죽음을 야기한다. 세상은 발전한다는데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이 모든 사태가 상극의 역사에서 빚어진 원한 때문이다. 누구나 성공과 승리를 꿈꾼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이 있으면 실패한 사람이 있다. 이긴 사람의 맞은편엔 진 사람이 있다. 실패자, 패배자는 상처를 입는다. 좌절한 이들에겐 씻기지 않는 원한이 남는다. 원한은 사람이 죽어 신명(神明)이 돼도 없어지지 않는다. 쌓이고 쌓인다.
그래서 상극의 역사는 곧 ‘원한의 역사’다. 원한이 천지에 가득 찼다. 우리를 질곡에 빠뜨리는 온갖 문제와 고통은 원한 때문이다. 쌓이고 쌓인 ‘원한의 불기운’이 때로는 인재(人災)로, 때로는 천재(天災)로, 또 온갖 질병으로 도처에서 폭발한다. 부분적인 해결이나 임시변통은 가능해도 이 질곡을 벗어날 도리가 없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대책 없고 허망하고 사람들을 속이는 몹쓸 종말론 따위도 횡행하게 되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현실은 참으로 힘겹고 세상은 문제투성이다. 그렇다면 그런 현실을 뛰어넘어 증산도가 바라보는 미래는? 안경전 종도사는 목소리를 높인다.
상극의 시대가 가고 상생의 세계가 열린다. 사람이 죽은 뒤에나 간다는 천국이나 극락이 아니다. 지상(地上)낙원이다. 분열됐던 세계가 한 가족처럼 살게 된다. 갈등과 대립이 없어지고 평화가 찾아온다. 물자가 풍부하고 차별도 없어 다투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은 물론이고 인간과 신명도 활짝 소통한다. 누구나 무병장수한다. 이기고 지는 사람, 상처받는 사람이 없으니 원한도 없다. 바로 이것이 증산 상제가 틀을 다 짜놓은 미래 상생의 세상이다. 이를 후천선경(後天仙境), 조화선경(造化仙境)이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숱한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일까. 여기서 증산도의 가을개벽론이 나온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가을개벽을 넘어서면서 기존 자연-인간-문명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인류역사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선명하게 이해하려면 먼저 ‘우주1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안 종도사는 안운산 태상종도사가 간결명료하게 정리해 주었다는 우주1년의 섭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주에도 1년이 있다. 지구의 1년처럼 우주의 1년 또한 봄-여름-가을-겨울로 사철 순환한다. 그처럼 우주의 계절이 바뀔 때는 어김없이 개벽이 닥친다. 지금 시점은 우주의 여름철 말, 가을 문턱이다. 이제 천지와 문명과 사람이 뒤집어지는 가을개벽이 온다. 개벽 중에서도 가을개벽은 특히 그 충격이 크다. 우주의 섭리대로 닥치는 개벽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봄은 낳고 가을은 거둬간다. 춘생추살(春生秋殺)의 섭리다.”
『개벽 실제상황』 『이것이 개벽이다』 등의 책을 통해 오래 전부터 대중에게 개벽 소식을 전해온 안경전 종도사는 이렇게 개벽을 말한다. “개벽은 새로운 인간, 새로운 자연(질서), 새로운 문명이 열리는 우주적 현상이다. 묵은 것을 일거에 정리하고 새 세상을 여는 것이 개벽이다. 인류에게는 위기이자 희망이요 비전이다.”
가을개벽이 어떻게 닥쳐온다는 것일까? 먼저 대 전쟁이다. 열강이 세계 패권을 놓고 최후의 일전을 벌이는 병란(兵亂)이 일어난다. 이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괴질(怪疾)이 덮친다. 인간의 어떤 약으로도 대처할 수 없는 엄청난 질병이 3년간 온 세상을 휩쓴다. 이른바 병란(病亂)이다. 그러면서 동북쪽으로 23.5도 기울었던 지축(地軸)이 일순간 바로 선다.
안 종도사는 “가을개벽의 충격이 크지만 결코 종말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라고 못박는다. 오히려 “가을개벽은 기존 세상의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고 새 하늘땅이 열리는 위대한 출발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런 까닭에 증산도에서는 가을개벽을 <거대한 시련, 위대한 희망>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세 번째, 상극의 세상에서 상생의 세상으로 넘어가는 이 와중에, 과연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한다는 것일까. 안 종도사는 그 요체가 원시반본(原始返本)이라고 설파한다.
원시반본은 ‘나의 근원을 밝혀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봄여름에는 생명의 기운이 뿌리를 떠나 줄기로, 잎으로 뻗어나간다. 그러나 가을에는 반드시 뿌리로 돌아간다. 그래야 이듬해 다시 싹을 틔우고 줄기를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생명의 기운은 가을이 되면 반드시 뿌리로 돌아가야 계속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의 순환은 끝난다. 그러니 나의 뿌리를 찾고 나의 뿌리를 소중하게 잘 받드는 것이야말로 ‘가을의 정신’이다. 생명의 기운은 뿌리에서 나온다. 사람이 오늘을 살아가는 힘도, 가을개벽 넘어 새 역사를 창조하는 힘도 자기 뿌리에서 나온다.
사람이 받들어야 할 뿌리는 무엇인가. 세 가지다. 자기 생명의 뿌리, 자기 역사의 뿌리, 인류 문명의 뿌리다. 안 종도사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내 생명의 뿌리는 부모와 조상이다. 그들이 있어서 내가 있다. 조상들은 내 안에 살아 있으며 언제나 나와 모든 것을 함께 한다. 그래서 조상은 그 어떤 신보다도 우선 받들어야 할 ‘첫 번째 하나님’이다. 다음은 자기 역사의 뿌리다. 민족의 뿌리인 시조신이다. 가령 우리 한민족에게는 환인·환웅·단군이 있다. 세 번째로 인류 역사와 문명의 뿌리인 상제님을 받들어야 한다. 상고시대 인류는 하늘의 상제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아 국가를 경영하고 삶을 끌어나갔다. 바로 이것이 인류의 시원문화, 모태문화다. 상제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한 ‘신교(神敎)문화’다.
도문이 결성된 이래 증산도가 우리 한민족의 뿌리와 역사를 중시해 온 바탕도 여기 있다. 이러한 원시반본의 이념에서 증산도의 3대 실천덕목도 나온다. 보은(報恩), 해원(解寃), 상생(相生)이 그것이다.
보은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 나를 있게 해준 모든 것의 은혜를 갚는다는 뜻이다. 해원은 사람들의 가슴에 맺힌 일체의 원한을 다 풀어 없앤다는 것이다. 상생은 남을 먼저 잘되게 하고 남을 먼저 살리면 그 공덕으로 결국 내가 잘되고 내가 살게 된다는 것이다.
안 종도사는 “상생은 나보다 남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뜻이다. 가을개벽에서 남을 먼저 살려내는 것, 보다 많은 사람을 살려내라는 것이 증산 상제가 말씀하신 상생이다. 또한 그것이 바로 증산도의 사명인 까닭에 증산도가 상생의 진리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