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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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재향경우회 김용인 중앙회장 인터뷰


 

대한민국재향경우회는 민생치안의 현장에서 한평생 봉사하다 퇴직한 경찰관들이 모여, 국민에 대한 봉사와 국가 치안활동 및 공익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63년 설립된 법정단체이다. 중앙회를 비롯해, 3개 특별회, 19개 시·도경우회와 경찰서 단위의 275개 지역경우회의 회원수는 무려 150만여 명에 달한다.

23대 김용인 중앙회장은 20215월 대의원총회의 높은 지지를 받아 1차 투표에서 당선되어 현재까지 중앙회장직을 맡고 있다. 경우회의 주인은 회장이 아닌 회원이라는 기조하에 항상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현하고자 노력하면서, 퇴직경찰관들의 복리증진을 위해 전념하고 있는 김용인 중앙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김용인 중앙회장님은 1972년 충남에서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 경찰이 되기로 결심하셨으며, 젊디젊은 순경시절의 모습은 어떠셨나요?

 

- 옛날 4H클럽 이라는 미국에서 시작된 농촌 청소년 모임이 있었어요. 거기서 활동하다가, 농촌지도소에 들어가 일했는데 앞으로는 농업보다 다른 것들이 전망이 밝을 것 같더라고요. 그때 저의 활동하는 모습을 본 지인들이 제가 경찰을 하면 잘할 것 같다고 추천해줬죠. 마침 충남 경찰에서 순경을 모집하는 걸 알게 되어, 충남 경찰학교에 들어가 20기로 졸업해 1972년부터 경찰이 되었습니다. 당시 1등은 대전경찰서로, 2등은 서대전경찰서로 발령을 냈었는데, 저는 2등을 해서 서대전경찰서로 발령받아 유천동 파출소에서 근무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경찰이 되고 보니깐 제가 만나게 되는 주민분들은 저를 통해서 경찰의 이미지를 떠올리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친절하고 책임을 다하는 진짜 멋있는 경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복장부터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당시엔 워커를 신고 바지에다가 고무링을 착용했어야 했는데, 그게 부끄럽다고 옷이나 장비를 대충 걸치고 순찰 도는 직원들도 많았었죠. 저는 항상 깨끗이 세탁한 정복을 입고 장비도 정석적으로 착용한 채 순찰을 다녔어요. 항상 주민분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명함까지 드리며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고 말했었죠. 주민분들은 처음엔 당황했는지 뭐 이런 경찰관이 다 있나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시다가, 한두 분씩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셨고 그게 소문이 나서 뭔 일이 발생했을 때 일단 저부터 찾는 분들까지 생겨났죠. 범죄 첩보 같은 것도 꼭 김순경 님에게만 알려주고 싶다며 파출소로 직접 찾아오신 분들도 있었는데, 한번은 제가 쉬는 날이라 파출소에 없었죠. 그러자 그분이 난 김순경 님 하고만 말하고 싶다며 그냥 돌아가신 분도 있을 정도였어요. 그 일로 파출소 선배들이 장난식으로 놀리며 칭찬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주민분들이 저를 좋아해주며 협조를 잘해주시니, 남들보다 쉽게 도둑도 잡게 되고 그러면서 외근 성적은 계속 1등을 유지했던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경찰생활을 하시며 어떤 업무들을 해오셨나요?

 

- 파출소에서 근무하다가 수사 서무를 봤어요. 그걸 계기로 충남도경의 기획감사과로 가게 돼 기획분야에서 열심히 근무하다가, 승진해서 경찰대학 교수계로 갔죠. 경찰대학에서 근무할 땐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실질적이고 참신한 교육을 해줄 수 있을지 항상 고민했던 것 같아요. 보통 교육이라고 하면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기존교육에 없던 색다른 강의와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나갔어요. 다행히 학생들의 반응도 뜨거웠고 실제 교육평가점수도 높게 나왔죠. 상황이 이러자 경찰대학에 김용인 주임이 온 후로 교육과정이 참신해지고 좋아졌다는 말이 돌면서 제가 경찰대학의 명물이라는 소리까지 나오더라고요. 그런 얘기들을 들으니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생각이 들었죠. 이후엔 서울로 올라와 올림픽경비단 행정계장으로 일했는데, 당시 서울올림픽은 한국역사상 가장 큰 행사였잖아요. 그런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약간의 기여 했다는 데에 아직도 뿌듯함을 느끼고 있죠. 또 한양파출소장으로도 근무했었는데, 파출소장인 만큼 어떻게 하면 파출소 직원들이 업무를 효율적으로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그 고민 끝에 파출소에 컴퓨터 비상벨을 국내 최초로 설치했지요. 이 컴퓨터 비상벨을 범죄 등 위급 상황에 대비하고자 관내 30개 주요 업소와 연결해 뒀는데,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신속하게 강도상해범을 잡을 수 있었어요. 당시엔 컴퓨터 비상벨이 굉장히 혁신적인 방식이었기에, 이 소식은 뉴스와 신문에도 대대적으로 탔습니다. 또 컴퓨터 비상벨로 외근 업무에서 계속 좋은 성과들이 나오자, 지역주민들에게 두터운 신임도 얻었고 서울지방경찰청장 표창 등 상도 여러 개 받았죠. 이후 경찰청 보안부 방범기획계에서 서무업무도 봤었고, 서울 기동단에서 경비계장 업무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이던 시절 경호대장도 맡았는데, 이게 제 경찰인생에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인 것 같습니다. 당시엔 24시간 긴장상태로 있으며 정말 목숨 건다는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이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고 다음엔 곡성경찰서장으로 근무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파출소장으로 근무할 때도 주민분들과 소통하며 안전과 편의를 제공하는 데 있어 큰 기쁨을 느꼈거든요. 그래서 곡성경찰서장으로 근무할 때도 항상 주민들의 입장에서 경찰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신경 쓰면서 많은 것들을 바꿔나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감사하게도 주민분들이 저를 많이 좋아해 주셨고, 곡성군청 노조위원장은 경찰서 게시판에 곡성경찰서 청렴도가 99.9%라고 올리기도 했죠. 그런데 곡성경찰서장 자리를 내려놓은 뒤 저의 공적비를 세우겠다고 연락이 와서 제가 절대로 그러지 말아 달라고 몇 차례나 설득했고 결국 세우지 않겠다고 얘기가 됐었어요. 하지만 이분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공적비를 세우셨더라고요. 뭔가 민망하고 부끄러우면서 감사하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김대중 전 대통령 대선후보 시절 경호대장 이력이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어떻게 경호대장을 하시게 됐으며 경호대장으로 근무하실 당시 상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 제가 충남 경찰국에서 일할 때 이무영 전 경찰청장을 알게 됐었어요. 그런데 이무영 청장이 경찰종합학교 교장으로 근무할 때, 제가 체력적으로나 업무능력적으로나 경호대장으로 적임자인 것 같다며 강력 추천해서 그 자리를 맡게 됐죠. 전 그동안 거쳐 온 보직에서 맡은 일을 그저 열심히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최고로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호대장을 할 때에도 이전 경호방식들에 문제점은 없었는지 분석하고, 가상의 상황들까지 고려해가며 구체적으로 대비하고 준비했죠. 당시 경호지휘체계 최종결정권을 제게 주었는데,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만약 경호 중 무슨 일이 발생하면 이건 다 내 책임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했었어요. 그리고 대선후보 경호대장이라는 역할이 단순히 안전만 책임지는 게 아니라, 후보님의 이미지에 피해 끼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되거든요. 그래서 시민들이나 취재진들에게 절대 불편을 드리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안전하게 후보님을 경호하려고 매순간 긴장상태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저의 이름이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과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 책자인 경천애인에 공동 저자로 올라갔는데, 제가 경호대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보셔서, 제 이름까지 넣어 주신 것 같아요. 사실 경호대장 이름이 대통령 관련 서적에 올라가는 게 세계적으로 봐도 전무후무하다 싶은 일이거든요. 아직까지도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재향경우회가 설립된 지 올해로 60년이 됐습니다. 회장님은 언제 어떻게 경우회에서 근무하시게 된 건가요? 또 역대 중앙회장 중 처음으로 비간부 경찰서장 출신이기에 20215월 선거 당시 이에 관해 반기를 드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선거과정에 대해 알려주세요.

 

- 제가 경찰대학에서 근무할 때 색다른 강의와 프로그램들을 만들면서 열정적으로 일하던 모습을 당시 경찰서장으로 경찰대학 교육을 받으셨던 전 전 경우회장님께서 인상 깊게 보셨대요. 그래서 제가 경찰퇴직을 하자 저에게 경우회 총무기획처장을 맡아달라고 하며 뽑아주셨죠. 그렇게 경우회에 처음 들어가 일하게 됐을 때 이제 내 제2의 인생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고, 경찰로 근무할 때와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회장, 수석부회장을 거쳐 경우회가 공동운영하는 기흥컨트리클럽 대표이사도 역임했죠. 그렇게 경우회의 주요 요직을 거치면서 중앙회장 선거에도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다만 역대 중앙회장님들은 저와 다르게 모두 경찰청장 등 경찰고위직 출신이었어요. 그래서 비간부 경찰서장 출신인 제가 중앙회장을 하면 경우회의 격이 떨어지는 거 아니냐 비하하시는 분들도 있었죠. 하지만 현재 경찰과 마찬가지로 경우회원 거의대부분 저처럼 순경으로 경찰생활을 시작하신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그분들을 이해하고 대변하는 일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물론 경합은 치열했고 함께 후보셨던 두 분도 굉장히 훌륭한 분들이지만, 제가 경찰로 살아온 인생과 경우회에서 일하는 모습들에서 진정성을 느끼셔서 저를 믿고 뽑아주신 거라 생각해요. 저는 선거전부터 경우회의 주인은 회장이 아닌 회원이며, 저는 심부름꾼이라는 마음가짐이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중앙회장을 역임하신지 2년이 되어 가는데, 그동안 가장 중점을 두고 하셨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 현재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경찰분들의 노력으로 인하여 세계적인 치안강국입니다. 하지만 과거 경찰의 비리사건이 상습적으로 터지며 이미지가 부정적인 시기도 있었죠. 경우회 역시도 과거 안 좋은 사건들과 연루되며 부정적인 뉴스와 기사들이 많이 나갔고, 상황이 나빠져 경우회 존폐여부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과거 왜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 고민해 보니, 가장 큰 문제점이 경우회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해서 그랬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경우회의 역할이 국가와 애국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밖에 없으므로, 저는 그 가운데서도 최대한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경우회 이미지 개선에 힘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공약사항처럼 중앙회 조직을 축소해 가면서 지역회 지원금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 노력했죠. 전 중앙회장으로 활동을 하면서 예산을 조금이라도 아껴 적절한 곳에 사용하려고 웬만한 건 제 개인카드로 해결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지방 일정으로 법인카드를 쓰게 되는 경우라도 아침식사라면 저는 라면같이 최대한 싼 걸 먹으려고 하고요. 이런 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중앙회장인 제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당연히 다른 부분들에서도 쓸데없는 비용이 발생하지 않게 되거든요. 또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 경우회원분들도 그 마음을 알아주셔서, 김용인 중앙회장이 참 애많이 쓰고 다닌다고 말씀들을 해주시더라고요. 때문에 제가 중앙회장이 된 이후로는 경우회에 대한 안 좋은 기사나 뉴스가 나온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 다음으로 신경 쓴 점은 지역 경우회의 활발한 운영이었습니다. 저는 이전부터 전국 곳곳의 지역경우회가 활발하게 잘 운영되는 것이야 말로 경우회가 발전하는 길이라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아무리 먼 지역 경우회라도 한 곳 한 곳 최대한 많이 방문하였습니다. 제가 회장이 된 후로만 110군데 이상 방문했던 것 같네요. 방문하여 그저 격려를 해드리는 걸 넘어, 애로사항을 들으며 함께 대안도 마련하고 발전을 도모합니다. 그러다보니 지방의 계신 경우회원분들은 중앙회장이 이곳에 방문한 적은 60년 역사에서 처음이다는 말씀도 하시며 좋아하시죠.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더 많은 곳을 방문해야겠다는 각오를 새기게 되는 것 같아요. 또한 권역별 워크숍도 꾸준하고 활발하게 진행했는데요. 그러면서 이전에 조금은 침체됐던 경우회의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걸 확실히 체감 중입니다.

 

 

2년도 안 되는 시간에 다른 업무들도 보시면서 110곳 이상 방문하셨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지방취재를 많이 다녔는데, 그저 차량이나 기차를 오래 타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피로감이 상당한데, 어떻게 체력을 유지하시는 건가요?

 

- 사실 저도 가끔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회원이 150만 명인 단체의 수장이라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회원분들에게 항상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체력관리는 누구보다 철저히 하고 있죠. 전 매일같이 산에 오르내리는데 6km거리를 왕복해요. 그러다보니 일평균 12000~14000보 씩 걷는다고 휴대폰 앱에 뜨더라고요. 이게 습관이 됐지만 어느 날은 귀찮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작은 습관도 지키지 못하면 절대 큰일을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벌떡 일어나 산에 오르죠. 또 젊은 시절부터 운동을 꾸준히 해왔고 성격자체도 워낙 긍정적이라서 그런지, 건강만큼은 저보다 열 살 스무 살 어린사람들보다 자신 있는 편입니다.

 

 

얼마 전 6·25 참전경찰유공자회 원로분들을 초대하셔서 격려 자리를 마련하시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가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는데요. 경찰원로분들의 예우에 대한 중앙회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 6·25전쟁을 비롯해 수많은 국가위기상황에서 경찰은 구국의 선봉에 서왔습니다. 또한 경찰업무 특성상 순직과 공상 경찰관들이 많은데 과거엔 그 수가 더 많았죠. 하지만 그분들에 대한 예우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군과 비교해서도 확실히 열악하거든요. 이런 걸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법률적으로 바꿔야 할 것들이 있어 결코 만만치 않지만, 자랑스러운 경찰원로분들의 합당한 예우를 위해 검토하고 있는 일들이 많이 있죠. 이런 것도 중앙회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2년 여간 경우회 중앙회장을 맡으시며 느꼈던 소감과 훗날 어떤 중앙회장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 ‘온몸을 불태웠던 회장이었다라고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하루라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열정을 다 바치고 있죠. 제가 평생 살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온몸을 불태우는 열정을 바친다면 어떤 부분에서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경우회의 주인은 회장인 아닌 회원분들이시죠. 150만의 회원분들을 생각하면 가만히 쉬고 있는 시간조차 죄송할 따름이기에, 매시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작년 이태원 압사사고가 발생하며, 경찰조직과 시스템에 관한 비난도 많았습니다. 선배 경찰관으로서 어떤 것들을 느끼셨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되길 바라시나요?

 

- 작년 이태원 사고를 보며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사고자체도 정말 끔찍했고, 그 사고로 인해 비난받는 경찰조직과 후배경찰들을 보는 것도 안타까웠죠. 이런 사고는 애초에 발생하면 절대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경찰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 분명하죠. 최근 몇 년 동안 경찰조직이 급변하며, 책임소재와 한계가 불분명해진 부분이 확실히 있기에, 이 부분만큼은 대대적으로 점검하고 자성하며 바로 잡아야만 합니다. 또한 경찰관 개개인의 책임감과 사명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경찰의 목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재산을 지키고 보장해주는 것이죠. 그런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직급에 관계없이 책임감과 사명감이 꼭 필요합니다. 정말로 다시 한번 이태원 사고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고, 우리 경찰이 더욱 심기일전하여 다시는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희 경우회도 후배 경찰관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바탕으로, 후배들이 하는 일에 적극 지원하며 성원을 보낼 것입니다.

 

 

대한민국재향경우회 중앙회장으로서 굉장히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시는 것 같은데, 최근 날짜 기준으로 어떤 일정들을 보내셨으며 올해 앞두고 있는 주요 행사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 221일에는 20231차 원로 자문위원회를 개최하여 신규위원 10명을 추가로 위촉했는데, 이날 신규 원로 자문위원으로는 이규식 전 해양경찰청장, 김해경 전 서울경찰청 경무부장, 김명호 전 경찰서장 등을 위촉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조직의 운영 및 발전 방안엔 대해 의견을 나눴죠. 223일에는 박강수 마포구청장을 만나, 오는 1012일 개최 예정인, 영일만 친구와 밥사는 사람이란 제하의 경찰·경우 장학기금 모금 음악회와 관련, 관내 마포아트센터 시설 사용 등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어요. 박강수 마포구청장도 평생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 봉사해 온 경우들과, 현직 경찰관들의 노고를 높이 평가하고, 의미 있는 음악회 개최에 대해, 구청 차원의 행정적인 지원 등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228일엔 경우장학회 제46기 장학금 수여식과 제74차 임시이사회를 개최했죠. 코로나19를 감안해 이날은 전·현직 모범 자녀 30명 중에서 3명만 초청하고 나머지 27명은 시도 및 특별회를 통해 장학금과 장학증서를 수여토록 하였습니다. 참고로 오는 1012일 열리는 경찰-경우 장학기금 모금 음악회에 대해 더 설명 드리고 싶은데요. 그날 전국의 경우회 및 장학회 임원, 수혜학생과 학부모, 경우 가족, 경찰 지휘부 등을 대대적으로 초청하여 그 고마움을 표하고, 장학기금 모으기 운동 활성화 및 저변 확대로 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시혜를 줄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영일만 친구와 밥사는 사람이라는 제하의 이번 음악회는 고향이 포항인 남재희 이사를 지칭하는 영일만 친구,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경우회를 지원해 주고 있는 백용기 거붕그룹 회장을 지칭하는 밥사는 사람을 조합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퇴임을 앞두고 있는 후배 경찰관들이 퇴직 후 어떤 삶을 살면 좋을지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 경찰이란 직업은 고되고 힘들기도 하지만 보람과 기쁨도 많은 직업입니다. 그렇게 바쁘게 경찰관으로서 살다가 딱 퇴직을 하게 되면, 스스로가 난 이 사회에서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 돼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괴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죠.

또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욕심을 내고 섣불리 사업에 도전하여 실패하거나 사기를 당하는 경우들도 있고요. 이런 부분은 절대적으로 조심하셔야 하죠. 하지만 지금 같은 100세 시대엔 퇴직 후 삶을 미리미리 계획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경우회에서도 퇴직경찰관들이 수사업무보조, 교통업무보조 등의 일을 참여시키는 등 퇴직 경찰관의 일자리 창출과, 기금 마련을 통하여 퇴직 경찰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 마련 등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다양한 성과들도 내고있는 중이고요. 저는 퇴직을 앞둔 후배분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현직에 있을 때와 같은 마음가짐을 갖춘다면, 어디에서는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사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또한 전·현직 경찰인은 모두 영원한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퇴임을 앞두고 있는 후배분들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존경받는 경찰로 퇴임하길 바라며, 퇴임 후 펼쳐질 제2의 삶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기자 : 문귀례    작성일 : 23-03-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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