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구치소, ‘6·25때 적에 맞서 자결 항거’순국 뜻 기려
해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오면 교정공무원들에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6·25 당시 개성형무소에서 순직하신 故 우학종 前 소장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위 38도선에서 불과 1km 거리에 있던 개성형무소의 우학종 前 소장은 북한군이 공격해오자 전 직원 비상소집 발령과 동시에 군부대에 지원 요청 후 적에 맞섰다.
개성형무소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힌 북한군은 우학종 소장의 가족과 뒤늦게 도착한 직원들을 인질로 잡은 채 항복을 종용했다. 그럼에도 故 우학종 소장과 형무관들은 동료 및 가족의 안전을 뒤로한 채 치열한 전투를 계속했다.
우학종 소장은 당시 개성 시내 전체가 함락당한 상태에서도 10시간에 걸쳐 끝까지 항전하다, 함락 직전 “피신할 수 있는 사람은 피신하라! 나중에 그 책임 추궁이 있거든 소장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했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고립무원 상태에 빠진 개성형무소를 끝까지 사수하다 산화한 우학종 前 소장의 애국정신과 투철한 사명감은 지금까지도 후대에 전해지며 교정공무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에 민낙기 소장은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서울구치소 교화공원에서 故 우학종(1905~1950) 개성형무소장을 추념하며, 6·25 전쟁 당시 순직한 호국영령의 희생정신을 기렸다.
민 소장은 “특히 故 우학종 소장의 숭고한 애국정신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