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소년시절을 돌아보며…‘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매일 사건사고와 마주하며 일상을 보내는 검사, 사법고시라는 관문을 뚫고 검사가 되기까지 어린시절 어떤 꿈을 꾸며 성장해 왔는지... 인천지검부청지청 차장검사실을 깜짝 방문해 김현철 차장검사와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 학생법률신문 창간이후 전국 검사로는 첫 번째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에게 우리나라 헌법의 중요성을 알리고, 준법의식 함양 및 더 나아가 국가 4대악 근절 과제 중 하나인 학교폭력 예방과 함께 건전한 청소년 문화 선도에 앞장서고자 창간한 학생법률신문에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검사로의 꿈을 가지고 성장해왔던 어린시절 이야기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미래의 동량으로 성장하는데 길잡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 검사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1968년 진주 근교의 농촌가정에서 2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그 당시 그 지역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다니셨던 분이였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서 그냥 농사를 지으시며 가장으로 식구들을 돌보셨습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를 중퇴하신 분이셨지만 아버지보다 지혜로운 판단을 하실 때가 많으셨던 분으로 가족들 중에서 저를 가장 예뻐해 주시고 정이 많으신 그런 분이셨습니다. 아무튼 초등학교 때는 작은 시골집에 고모와 삼촌, 할머니, 증조할머니까지 함께 사는 집에서 소를 먹이고, 농사일을 돕느라 늘 분주하고 바빴던 기억이 있습니다.”
- 그 어린 시절 ‘법조인이 되겠다’ 꿈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농사일을 도와가며 학교를 다녔던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셨는데 당시 초라한 우리 집에 선생님이 방문하신다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어머니와 선생님의 대화중에 어머니께서 “우리 아들 학교에서 생활 잘 합니꺼”라는 물음에 선생님께서 “네 아주 잘합니다. 공부도 잘해서 지금처럼 계속 90점 넘게 받으면 서울법대에도 갈수 있습니다” 이 한마디의 칭찬이 어린 나는 장차 ‘꼭 서울법대에 가겠다’는 마음을 새기게 됩니다. 초등학교 운동장 벤치에 누워 은행잎 사이로 파란 하늘을 보며 20년 후에 내 모습을 그려보며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신 서울법대와 법조인은 나의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렸던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은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폐교가 된 시골초등학교 한 학년이 한반이었는데 총 학생이 58명 정도였습니다. 과외나 학원이 없었던 시절 용돈을 모아 매주 우편으로 보내주는 학습지와 전과 참고서로 시험을 준비하여 학생들 사이에서 아주 눈에 띄는 우등생으로 선생님이 며칠간 출장을 가시면 선생님 대신 수업을 했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르네요.
선생님들께서는 ‘현철이는 대통령감’이라고 칭찬해 주셨는데... 중학교 때까지 반장으로 또 학생회장으로 늘 학교의 대표로 미술대회, 과학경진대회, 웅변대회에 나가서 여러 가지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 법조인의 꿈을 향해 가기까지 고비는 없었는지요.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죽도록 힘들 만큼 공부해도 나보다 성적이 더 좋은 친구들을 보면서 비교의식과 열등감, 우울감에 사로잡혀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시골에서 온 학생들은 1-2학년 때는 성적이 좋지 않다가 3학년 올라가서는 성적이 쑥쑥 올라간다, ‘현철이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격려해 주셨 던 말씀대로 고3때 마지막 학력고사에서 정말 감사하게도 원하던 성적을 거둬 서울법대를 지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울법대 입학의 기쁨도 잠시 아무런 친척과 친구가 없는 서울로 혼자 유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 서울로 오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을 정기적으로 마련할 방법이 없었는데 아버지 지인의 소개로 사업가의 집에 입주과외로 학비와 졸업 때까지 전액장학금을 지원받아 법대를 다니면서 사법시험준비에만 몰두하여 대학4학년 때 사법시험 1차를 합격하고 그 다음해 마침내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 어린시절, ‘법조인이 되겠다’고 품었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세 가지를 들다면...
첫째는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온통 농사일과 집안일을 도맡아 하시면서도 내게 항상 웃는 얼굴로 칭찬과 격려해 주셨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공부를 그만하고 자라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던 아이였습니다.
둘째는 선생님의 칭찬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가정방문 오셨던 그 선생님의 칭찬이 내 꿈을 빨리 찾을 수 있게 했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 힘들어 하던 시절 격려해주셨던 선생님의 칭찬이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꿈을 끝까지 붙잡을 수 있게 했습니다.
셋째는 장학금을 준 분들의 도움이었습니다. 대학교 때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를 해야 했던 시절 장학금과 또 과외를 하면서 용돈을 벌수 있도록 해 주신 분들이 없었더라면 사법시험에 합격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생각해 보니 부모님도 감사하고, 선생님도 감사하고, 나에게 장학금을 주신분들도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고 그분들에게 진 빚이 많습니다.
- 마지막으로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인생을 돌이켜 보니 ‘결과가 아니라 과정자체가 목적’이라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열매는 나뭇가지에 붙어 있기만 하면 절로 맺혀집니다. 나무를 떠나서 스스로 만들어지는 열매는 없습니다. 어린시절을 잘 지내올수 있도록 해 주신 한분 한분이 고맙고 감사합니다. 지금 힘든 과정에 있더라도 누군가 그 사람을 위로하고 힘을 줄 수 있다면 이미 그것만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요. 꿈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고 꿈을 이루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만 인생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도 매우 소중하다 생각합니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자 작은 일이지만 4명의 고아원 아이들을 초등학교 때부터 후원해서 어느덧 그 아이 중 셋은 이미 대학생들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어릴 적 선생님께서 제게 해 주셨듯이 꿈을 심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자 합니다. 그리고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유미연 기자
*2015년 9월 30일 학생법률신문 2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