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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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호 청주지방검찰청 형사1부장검사


 

노력하는 사람 누구나 ‘멋진 검사’ 될 수 있어...

사건 당사자 인생 걸린 문제 유념…한건한건 최선 다해

 

- 어린시절, 언제 검사에 대한 꿈을 꾸었는지

저는 경북 상주의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의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제 고향은 지금도 그렇지만 관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천수답 논이어서 벼농사에 애로점이 많았고, 부모님께서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논이 적어 흔히들 다른 분들처럼 이웃집의 논을 빌려 세를 주고 농사를 지었지만 소득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버스가 세 번 다니는 경북 상주의 오지 산골이다 보니 가을의 추곡 수매, 키우던 소가 출산한 송아지 판매, 가을에 깎아 달아놓은 곶감 판매로 인한 소득이 목돈이 나오는 전부였던 그 시절, 커가는 자식들의 교육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부모님께서는 당시 공업단지였던 구미시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입니다. 구미로 이사하신 부모님께서는 전세방을 마련하고 구미공단에 취업하시어 맞벌이를 하시며 알뜰하게 저축을 하신 관계로 이후 저희 3형제 모두 대학을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 구미로 이사를 하지 않고 상주에서 성장했다면 저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면소재지에 있는 중학교에서 자취하고, 상업고 등 실업계로 진학하는 과정을 거쳐 일찍 사회에 취업하여 지금과는 다른 생활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현재 검사로 재직하고 있는 것은 모두 존경하는 우리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 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언제 검사에 대한 꿈을 꾸었는지

사실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검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보는 사회에 대한 시각이 상주 산골과 구미에서 접하는 것이 전부이어서 미래에 대한 원대한 꿈을 갖기는 힘들었습니다. 남녀공학인 중학교를 다닐 때 나름 공부는 곧잘 했지만 미래의 직업에 대하여 제가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저는 고등학교 학비 부담 없는 철도고등학교로 진학해서 기관사가 되고자 마음먹고 모집요강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입시철에 모집요강이 오지 않아 제가 직접 철도고등학교에 편지를 보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철도고등학교가 그해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는다는 답장에 결국 인문계인 구미고등학교로 진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해서 고1때의 담임선생님 덕분에 영어 기초를 잡을 수 있었고, 열심히 공부해서 학력고사를 치뤄 경북대 법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집 형편에서는 서울로 진학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에 경북대학교에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1학년을 마치고 복학해서 사법시험에 매진하게 되었고, 결국 1996년 최종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사법연수원 시절, 시보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검사시보를 하면서 주어진 상황에 판단만 하는 법관보다는 감춰진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검사가 제 적성에 맞고, 당시 지도검사님의 열정적인 수사 모습에 검사를 지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언론이나 영화, 드라마 등에서 검사의 역할에 대하여 많이 접하고들 있어 어린 나이에도 검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많이들 알고 있지만, 시골에서 성장한 저로서는 검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법대로 진학하고, 사법시험을 합격해서 현재 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억울함을 당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검사가 되었다는 드라마적인 요소는 제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 학창시절 겪어왔던 과정

제가 학교생활을 할 때에는 지금보다는 경쟁이 조금 덜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과외라든가 하는 것을 물론 저의 집 형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당시에는 과외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야간자율학습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한 것이 학력고사 고득점의 비결이었던 시절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저는 키가 매우 작았습니다. 교실에서 자리 배정을 할 때 저는 항상 맨 앞줄이나 둘째 줄에 앉을 정도로 키가 작았고, 제 키가 170센티미터만 넘으면 더 바라지 않을 정도로 키에 대하여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행히 현재는 173센티미터에 달해 큰 키는 아니지만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제 친구들이나 동창생들을 만나면 제가 키가 아주 작고 조용하고 공부를 잘하는 동창으로 기억들을 해 줍니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우리 3형제를 교육시키기 위해 무척 고생하신다는 것을 옆에서 보고 성장했기에 한눈을 팔수가 없었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요즘 들어 가끔은 좀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후회도 들지만 그래도 부모님 생각에,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해서는 ‘제가 잘 성장하는 것이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공부에 전념한 것이 오늘의 내가 있게 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검사는 어떤 매력이 있는지

검사는 소극적이지 않고 적극적, 능동적으로 활동합니다. 사회에 범죄가 발생하면 실제로 누가 자행한 것인지를 밝혀 그에 대한 단죄를 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이 있듯이 국가형벌권이 적절히 작용되어야 우리사회가 건강해 지고, 국민들의 생활이 편해집니다. 모든 국가기관이 그 나름의 존재 의의가 있지만 공정한 국가형벌권의 집행에 관여하는 검찰의 존재의의 역시 중요성이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선의 검사들은 묵묵히 자기소임을 다해 일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노력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 가장 보람 있었던 일과 앞으로 비전에 대해

검찰은 국가형벌권을 실현하는 기관으로 다른 국가기관과 달리 그 대상인 범죄인에게 형벌을 부과하는 악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수혜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기관은 민원인에게 칭송을 받기 쉽지만 검찰은 형벌을 부과하기에 피고인들로부터 원성을 들을 수 있어 결국 양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처벌받는 사람으로부터 형벌에 대하여 수긍하고, 피해자로부터 적절한 형벌과 도움을 받았다고 칭찬을 듣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저는 많은 사건을 다루어 왔는데 그 중 몇 가지 사건은 기억이 나기도 합니다. 일일이 사건에 대하여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구속될 위기에 처한 사람을 그 변소에 귀 기울여 실제로 죄가 없다는 것을 밝히고, 실제로 누명을 씌우려고 시도한 고소인을 구속하고, 마약사범으로 몰린 기업인이 누명을 쓴 사실을 밝혀내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사건에서 범죄 혐의자가 누명을 쓰는 것이 아니지만 정말 누명을 쓴 것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 주었을 때 검사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검사가 처리하는 사건이 각 사건의 당사자에게는 정말 인생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 한건한건 최선을 다해 수사에 임하겠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지속된다면 검찰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차츰 좋아지리라 예상해 봅니다.

 

- 검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검사라는 직업이 막상 좋은 면만 부각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검사에 대하여 매우 나쁜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기존 우리 검찰에서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는 사건처리를 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그러한 비난 역시 검사들이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극복해 나가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검사는 이미 말씀드렸듯이 사회의 어두운 면인 범죄에 대하여 국가 형벌권을 집행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검찰권의 행사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큰 사명감이 필요합니다. 학생 본분인 학업에 매진하고, 사회의 여러 현상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신다면 멋진 검사가 될 수 있습니다. 검사는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사람 누구나 검사가 될 수 있습니다. 꼭 목표를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유미연 기자

*2016년 2월 29일 학생법률신문 7호 게재

 기자 : 법률선진신문    작성일 : 18-04-2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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